본문 바로가기

Novel/이벤트

[국민] 속앓이

(BGM :: Fly to the sky - Sea of Love)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귀여워서 예뻐하고, 옆에 두고, 찾아다니면서 챙기는 것의 반복이었다.



연습생때부터 정국을 아끼고 같이 다니는 것은 멤버들 누구나 알고있던 사실이었고, 데뷔하고나서는 아예 정국맘이라는 말까지 붙을 정도로 지민은 정국을 예뻐하고, 챙겼다. 방송에서도 잡지 인터뷰에서도 꾸밈 없이 정국의 칭찬을 하며 기특하다는 듯 방긋 웃는 지민을 보고있자면, 멤버들 사이에서는 장난이지만 지민이가 정말로 정국이를 좋아하는거 아니야? 하는 말도 오갈 정도였다.



그 커다란 사랑을 별 생각없이 받아주던 정국이 단호하게 거부하고 피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정국이- 뭐해-?"

"아, 안지마요. 게임 하잖아요."



평소와 다름없이 지민이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있는 정국에게 다가가 뭐하냐고 물었을 때, 정국은 별 반응이 없었다. 평소처럼 그를 보지도 않고 툭 말을 던졌다. 원래라면 아이- 정국아- 하며 또 어눌한 말투로 자신을 뒤에서 안아올 지민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한 정국이 잠시 일시정지를 눌러놓고 뒤를 돌아보니 지민은 그저 시선을 아래로 두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치이. 하고 삐져있을 얼굴을 생각하면서 돌아본 것인데, 그렇게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으면 내가 뭐가 돼. 하는 생각을 하던 정국은 러게. 누가 방해하랬나.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좋았던 자신의 기분이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가는 듯이 나빠져 짜증이 났다.



그런 정국을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지민이 결국은 터덜터덜 슬리퍼를 끌며 호석의 옆에 가서 털썩, 소파에 앉자 호석이 왜. 정국이가 뭐라그랬어? 하고 무심하게 물어온다. 무심함 속에 들어있는 다정함이 지민의 감정을 더 북받쳐오르게 한 것인지 눈물이 핑 돌아버려 고개를 젓고는 호석을 등지고 소파 등받이에 기대누웠다. 팔에 눈을 대고 자는 척을 하는 지민의 옷 소매가 촉촉하게 물들어갔다.




*




"지민이 형."



자신을 부르는 말에도 대답을 않고 누워있는 걸 보면 이미 깊게 잠이 든 게 아니면 꽤나 삐져서 무시하는 것이었다. 삐진건가. 무시하는 건가. 아까는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에 정국이 지민을 달래려 지민에게 다가가는데 옆에 앉아있던 호석이 정국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그렇게 묻자 금세 눈빛을 바꾼 호석이 어? 내가 뭐?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되물었다. 무언가 깊게 생각할 때, 그리고 무언가 맘에 들지 않은 것이 있을 때에 나오는 저 눈빛. 호석이 형은 지금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가장 밝아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형, 방금.. 아니에요."

"아 뭔데-"
"아니에요."



계속해서 사랑을 받아주던 사람이 갑작스레 거부하고, 피하는 것에 지민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맘에 들지않아 저도 모르게 정국을 노려보고 있었고, 사실은 너도 지민이 좋아하지 않냐고, 니가 그렇게 지민이한테 차갑게 대하면 안되지 않냐고 한 소리 하려고 했던 호석이었다. 그러려고 했었는데, 지민의 등을 토닥이고 쓰다듬으며 형. 이제 일어나야돼요. 조심스레 지민을 달래는 정국의 표정이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다른 형들은 저렇게 깨우지 않으면서. 호석 자신보다도 더 자기자신을 모르는 것 같은 정국을 보며 호석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이 잠결에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에 응? 하고 지민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던 정국이 소매에 포옥 파묻혀있는 얼굴을 떼어내는데, 잡은 소매가 축축했다. 설마하는 생각에 감겨있는 지민의 눈을 들여다보니 붉어진 채로 약간 부어있는 것이 운 것이 분명했다. 보통 동생이 몇 번 틱틱댔다고 이렇게 우나? 하는 생각에 빠져 정국이 지민의 팔을 놓자 힘없이 다시 소파로 픽 쓰러져버리는 지민이었다. 팍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정국이 지민을 흔들어 깨워 메이크업 수정해야된다고 겨우 누나들한테 보내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부은 눈으로 잠에 취해 헤롱헤롱 걷는 지민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높고 밝은 목소리의 끝은 무언가로 거칠게 갈아놓은 듯 갈라져있었다. 평소보다 잠겨있던 목소리도 문제였지만, 그걸 생각하지도 않고 감정을 살려 몰입한 탓에 목을 긁어가며 노래한 것도 문제였다. 헷갈리게 하지 말라는 가사가 너무나도 와닿았던 지민은 그렇게 격하게 노래를 했고 물론 무대를 잘 마쳤지만, 목의 상태가 좋지 않은지 대기실에 오자마자 목을 보호해준다고 광고하던 알약 하나를 입에 물었다. 


멤버들도 다들 평소보다 조금 더 격했던 지민의 목소리를 눈치챘는지 너 목 괜찮냐. 하고 물어왔다. 그 와중에도 정국만이 지민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이제 막방이니까 막 지르는거냐며 그래도 목은 아끼라고 등을 토닥이던 남준마저 옷을 갈아입으러 사라지자 지민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뭐, 한두번인가. 중얼거리던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뒤에는 그를 따라 움직이는 정국의 시선이 있었다.




*




해외투어를 도는 내내 지민은 정국에게 평소처럼 대하고, 끌어안고, 괜히 다가가 장난도 걸어보았지만 정국의 태도는 그 이후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가끔씩 그저 살풋 웃을 뿐 금세 표정이 바뀌고 지민을 피해 다른 멤버들에게 가거나, 아니면 지민이 뭘 하는지 가만히 보고있을 뿐이었다. 안 그래도 외롭고 쓸쓸한 타지 생활인데 정국이 자꾸 자신을 피하는 것이 느껴지니 결국 지민은 정국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시간이 늘었고, 태형과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 지민의 행동에 눈물 지은 것은 정국이었다.



지민은 오히려 정신력이 강한 편에 속했다. 힘든 것이 있어도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이었고,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푸는 법조차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과 지내면서 서로 웃고 장난치며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타입이었다. 그와 달리 정국은 무언가 생각에 꽂혀버리면 생각이 점점 깊어져 그 생각에 갇히고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소리죽여 우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런 정국을 토닥여주고 달래주던 건 지민이었는데, 지금은 지민이 정국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건 전부 자신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정국 스스로를 더 방 한 구석에 옭아매는 것이 되었다. 




형이 나한테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내가 형을 좋아하나봐. 그래서 내 마음이 아픈가봐.


그래서 형이 다른 사람을 보고 웃고 있으면 짜증이 났었나봐. 그게 질투였나봐.

어쩌면 내가 형을 더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그러면서 아닌 척 했던 것 뿐일지도 몰라.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말하면 용서해줄까.




발코니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똑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국아?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무언가 걱정하는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 지금까지 정국 자신을 달래줄 때 내던 그런 목소리였다. 급하게 눈물을 닦으며 잠깐만요. 하고 달려가 문을 열어주자 머뭇거리던 지민이 나 들어가도 돼? 하고 물어왔다. 잠시 생각하던 정국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민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번과 이번 숙소에서 정국의 룸메이트가 된 태형이 요즘 정국이 상태가 이상하다며 먼저 지민에게 걱정스레 말을 꺼냈었다. 이상하다고? 물어오는 지민의 말에 태형이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니가 가 봐. 하고는 자신은 형들이랑 있겠다며 아예 시간을 내 준 것이었다. 며칠, 몇 주 동안 정국과 깊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방에 들어와서도 입구에 서서 한참동안 말이 없던 지민이 자신을 지나쳐 발코니로 가서 앉는 정국을 따라 발코니로 향했다. 정국과 테이블 하나를 두고 앉은 지민은 가만히 정국을 바라보다 차분히 말을 건넸다.



"정국아."
"...네."
"걱정 있어?"

"아뇨."



거짓말이란 게 빤히 보이는 말이었다. 내가 널 모를 것 같냐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다그치면 눈물을 쏟을 듯한 정국의 표정에 지민은 꺼낼 말을 고르고 골랐다.



"나한테 말해줄 수 없는 고민이야?"
"...고민 없어요."
"나한테도 말 못하는 고민인거구나."
"...아니에요."
"나는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은데, 허락해주면 안 될까?"



결국 정국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럴 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있는 지민이었다. 정국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그를 기다리며 그의 눈, 코, 입, 머리카락, 정국의 하나하나를 보던 지민은 며칠 자세히 안봤다고 그새 더 멋있어졌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런 정국이 우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웃게만 해주고 싶은데, 도대체 무엇이 정국을 괴롭히는지 알고 싶었다. 긴 기다림 끝에, 굳게 다물어져 있던 정국의 입이 열렸다.



"형은 있잖아요. 나를 어떻게 생각해요?"
"너? 멋있는 동생이고, 아껴주고 싶은 동생이고, 귀ㅇ.."
"그런거 말고."
"응?"
"동생 말고. 사람으로 어떻냐구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어떻냐고 물어보아도 대답해 줄 수 있는 말은 비슷했다. 멋있고, 아껴주고 싶고, 귀엽고.

사실 동생이 아닌 사람으로 볼 때, 딱 하나가 달랐다. 좋아한다.



"사람으로?"
"나는요. 형이 가까이 있어주면 좋구요, 나 안아주면 좋구요, 사람들이 형 칭찬하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요."
"..."
"그래서요, 나 이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거든요."
"...응."
"근데, 이거,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설마, 하는 마음에 그저 듣고만 있던 지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숨겨왔던 감정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



"정국아.."
"그리고 우리 둘 다 남자잖아요."
"정국아."
"안되잖아요."
"형 말 좀.."
"왜 좋아했어요.. 나를.."



왜 좋아했냐는 말에 지민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마도 정국은 그 스스로에게 묻고있는 것일텐데도, 자신도 그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그래서 더더욱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민은 왜 나을 좋아해서, 왜 나에게 애정을 주고 표현을 해서, 왜 그 애정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서, 결국은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었냐고 자신을 질책하는 것만 같아 지민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보는 정국의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금방이라도 또르륵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맑은 눈물이 점점 정국의 시야를 가리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지민의 눈빛에 왈칵. 쏟아져내렸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눈물을 봐왔었고 자신을 달래주던 사람이지만,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눈물 흘리는 모습 같은 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민에게 절대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돌렸지만 훌쩍이는 소리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남자라고, 사랑..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조금은 더디게, 조금은 조심스레 나온 지민의 말에 크게 숨을 쉬던 정국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정국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지민이 다시 한 번 정국에게 말했다. 우리 둘 다 남자라고 해도, 사랑할 수 있어. 크게 뜨여진 정국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울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는데, 자신 때문에 울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쓰려왔던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국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 지민의 행동에 정국은 또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지민이 보지 못하게 팔로 얼굴을 가렸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그 팔을, 지민이 살포시 잡아 내렸다. 그리고 정국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사귀자, 정국아."

"...응."





'Novel > 이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짐] 작업실  (0) 2016.10.29
[뷔민] 관계  (0) 2016.08.15
[국민] 표현  (0) 2016.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