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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전력

[국민] 좋아해요




국민 전력 83회차


형, 많이 좋아해요.

형, 나랑 멀리 도망가요.

형, 우리 같이 살아요.






  형, 내가 많이 좋아해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마음 속에서는, 한 밤중의 내 방에서는 수없이 울렸던 말이었다. 내가 더 전부터 좋아했는데, 내가 더 전부터 사랑했고 옆에 있었는데 결국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의 곁에 자리잡았다. 그와 나란히 걸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 나는 좋아보인다며 장난을 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형, 있잖아요."
"응?"
"음.. 아니에요. 아무것도."

"뭐야-.."

"맞아, 형 괜찮아요?"
"응?"
"어른들이, 자꾸 이상한 말 하잖아. 그거.. 괜찮냐고.."
"당연하지! 안 괜찮을 게 뭐야."



  나의 실없는 말에도 그저 베시시 웃는 당신이었다. 형의 미소가 나에게는 행복이었고, 형의 눈물은 나에게도 슬픔이었다. 그런 당신에게 어른들은 그런 말들을 했다. 저 아이는 여우라고. 여우가 사람의 아이를 가지려고 하니 아이가 들어서질 않는 거라고. 그저 가만히 있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를 시샘해 퍼뜨린 나쁜 말인 것이 틀림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등한시하고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는 나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에게 가까이 가지 마라, 너도 그 여우한테 홀린 거냐, 정신 차려라 등등. 나는 그저 그가 좋아서 그의 웃음을 보고 싶어서 그에게 다가갔을 뿐인데 마치 내가 커다란 잘못이라도 하는 것 마냥 그를 부정한 물건 취급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침 일찍 그에게 가서 하루 종일 그와 함께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나를 반기는 것은 소금세례였다.



"네가 그 요물을 잔뜩 묻히고 들어왔구나!!"
"엄마!"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줌마라고 불러?!"
"너 그 여우한테 다시 한 번만 갔다가는 가만 안 둘 줄 알아!"


  가만 두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은 아니었던지, 다시 한 번 그를 만나고 온 날 나를 기다린 것은 지독한 감시였다. 어머니가 마을 전체에 얘기를 해두었는지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징그럽다. 더럽혀진 듯한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은 역시나 그였다. 이 상태로 그를 만나봐야 어른들이 그에게 또 다시 해코지를 할 것이 분명해 나는 그에게 작은 인사만 건넬 뿐 더 이상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있는 그 사람이 그에게 정말로 잘해주고, 예뻐하고, 아껴줬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그 사람은 병을 앓다 죽었다. 들은 바로는 형과 결혼하기 전부터 꽤나 많이 아팠다고 했다. 형이 그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것이고 그가 죽으면 기뻐 날뛸 거라는 나쁜 말들이 돈 것도 다 그것이 원흉이었다고 했다. 아픈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하는 게 무엇 때문이겠냐며. 적어도 내가 아는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정국아."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야? 어른들이 보냈니?"
"아니. 내가 온거에요."
"바람이 차다. 들어와."



  깊게도 한기가 온몸으로 스며들던 겨울, 그 사람이 떠났다. 장례를 치르느라 집을 정리하지 못했다며 먼지 쌓인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고는 방석을 놓아주는 당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착한 사람이었다. 마주보고 앉아 무어라 말도 없이 가만히 서로를 보고, 바닥을 바라보고, 서로의 손을 바라보던 당신과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괜찮냐고 그리 물었을 뿐이었다. 말이 없어도 눈을 맞추고 살풋 웃어보이는 그 표정에서 괜찮다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볼게요."
"벌써?"
"응. 나 엄마한테 또 두들겨맞을 거야."



  배웅을 하겠다며 같이 자리에서 일어선 그의 양 팔을 살짝 잡았다. 앉아있어요. 밖에 추워. 내 말을 들은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의 손을 천천히 잡아 내렸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것 조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걸까. 뒤를 돌아 문고리에 손을 가져갈 때, 뒤에서 작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오지마."


  그리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울먹거리는 것도 같아 저 말이 진심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나는 그래도 미움받고 있지는 않구나.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려나 하고 고개를 들어 집을 둘러보다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거부당한 건 난데 왜 당신이 아파할까. 왜 당신이 그렇게 눈물을 흘릴까. 그 이유는 나도 아주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당신을 안아주려다, 나를 위한 거절이 아니라 정말로 당신의 마음에서 나온 거절을 당할까 그만두었다.



"나, 또 올 거야."



  내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당신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는 것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뒤돌아 당신을 볼까 망설이다 나는 그대로 형의 집을 나섰다.


  그 후에도 나는 형을 자주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를 쳐다보든, 상관없었다. 혼자 남은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나 뿐이었고,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온전히 나 뿐이었다. 그와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강가에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가끔은 산에 가서 같이 나물을 캐오기도 했고, 형네 닭장을 고쳐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와 만나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감시는 오히려 약해져갔다.



"형! 형 잠깐 나와봐요!"


  갑작스러운 나의 부름에도 그는 무슨 일이냐며 집에서 나왔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두툼한 가디건을 걸쳐입은 형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오늘은 꼭 말할 생각이었다. 오늘만큼은 꼭 내 맘을 전할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자꾸만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형, 있잖아. 내가 있잖아요. 처음 봤을 때부터 형이 좋았거든요."
"응?"
"그 좋아한다는 게, 형 처음봤을 때 사람들이 막 손가락질 하고 욕을 하는데도 형이 너무 이뻐서. 아니 이게 아니고."

"정국아."
"아니 그러니까, 죽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전부터 좋아했고, 그리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하고."
"정국아."
"어, 그러니까-.."
"정국아!"



  나의 이름을 부른 그의 눈은 빨갛게 변한 채 벌써부터 나에게 무언가의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이 뒤에 무어라고 말을 할지 나는 다 알았다. 그의 눈만 봐도 다 알았다. 오래 지켜본 그의 눈이기에, 내가 참 좋아하는 그의 눈이었기 때문에 더 잘 알았다. 붉어진 두 눈에는 투명한 것이 자꾸만 차올라 예쁜 갈색의 눈동자를 가렸다.



"정국아. 아니야."
"..뭐가 아니에요."
"아니야.."
"뭐가요."
"그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소리치려는 나의 손을 그의 손이 감쌌다. 여전히 투명한 것이 가득찬 형의 눈에서는 결국 그것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울지마. 작게 말한 나의 목소리에도 울컥이는 것이 자꾸만 차올랐다. 왜 아니라는 거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을 더 꼭 잡는 그의 손이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 듯해 그 뜻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돌아가."



  이제는 숨길 수도 없는지 크게 흔들리는 목소리는 나에게 제발 떠나달라고,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저 세글자. 돌아가라는 세글자가 나에게는 그리도 크게 다가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고 그의 집을 떠나게 했다. 뛰어가면서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펑펑 울면서 걸었다. 모순적이게도 길가에는 예쁜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예쁜 꽃들이 마치 그를 보는 것만 같아 나는 더 서럽게 울었다.


  길을 걸으며 한참을 울었다. 신기하게도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내어 울면 이 길에 누군가 나와서 보진 않을까 소리도 내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볼품없게도 울었다. 자꾸만 닦아낸 눈가는 따끔거리며 아팠고 이제는 목마저 쉬어 간질거렸다. 끝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끝날 것도 알고 있었다. 슬픔 후에는 허탈함이 찾아왔다. 허한 마음에도 하얀 머릿속에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집을 찾아갔다.



"이게 무슨일이야-!!"
"물! 물 가져와!!"



  바닥만 보며 걷다 고개를 들어 우리 집을 바라봤을 때, 그 곳에는 온전한 집이 아닌 붉게 타오르는 구조물이 있었다. 꿈뻑, 꿈뻑. 불이 났네. 저 집. 우리집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였다. 어서 물을 가져다 나르라는 엄마의 말에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어 급하게 물을 퍼다 날랐다.


  한참이 지나고, 불이 모두 죽었을 때,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목재로 된 기둥과 기둥에 서로 불이 옮겨붙은 탓에 지붕, 지붕 아래에 있던 이불들이 타올랐고, 그리고 천천히 불이 옮겨붙어 집안 전체가 불에 휩싸였다. 옷가지는 물론이고 책도 전부 타버린 탓에 순식간에 집을 잃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마저도 내 탓이라 했다. 형과 자주 접촉한 내가 부정을 타 그리 된 것이라고 했다. 그게 이유라면 3년도 더 전에 우리집은 이미 사라졌어야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화를 불러일으킬 이유는 없었다.




*




"이제 못 봐서 어쩌나."
"자주 올게요."
"그래, 꼭 놀러오고!"
"예. 건강하시구요!"



  마을 사람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부모님을 보고있자니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집이 전부 불타버린 탓에 나는 할머니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게 되었다. 화재의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들었다. 다만, 한밤 중에 자는 척 방에 누워있을 때 들려왔던 말로는 누군가가 우리집에 침입해서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듯 했다. 아마도 그것이 형을 죽도록 싫어했던 어느 할아버지의 소행인 것 같다는 것도 들었다. 이제 오지말라던 형의 말을 들었어야 했었나. 그런 생각에 멍하니 창 밖만 바라봤다.


  마을을 떠나고 매일매일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마을로 돌아와 그를 만나려고 할 때, 형은 여전히 그 마을에 남아있을까. 남아있다면, 다음에 만나면 이 말을 꼭 해야지. 나는 그런 소문따위 신경쓰지 않는다고. 내가 많이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형만 좋다면 나랑 멀리 도망가자고, 소문 따위가 없는 그런 조용한 곳에서 나랑 같이 살자고.. 이 말을 꼭 해야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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