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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단편

[국민국] House of card


귓가에 들려오는 발소리가 한 개가 아닌 두 개인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당신이 내 뒤를 따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알고있지만 구태여 쫓아내지는 않았다. 당신에게 아는 척을 했다가는 당신이 더 행복하면서 나를 더 귀찮게 할 것을 알기 때문에. 대신 당신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어둠 속 지름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수 많은 길 중에서도 굳이 검은 어둠으로 가득한 길을 택한 것은 혹여나 나를 따라오던 당신이 한 순간 길을 잃어 더 이상 나를 못 쫓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야, 집에 가자."
"한 잔만 더하고!"


밤인데도 아직 술집들이 문을 열고 있어 환하게 밝고 사람도 많은 넓은 길을 걷다가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젠장할. 발자국 소리는 여전히 두 개였다. 이 앞에 수 많은 갈림길이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을 뿐더러 그가 나를 놓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작은 확률에 걸어보기로 했으니 한 번 생각한 건 실행해봐야겠지. 평소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그도 잘 알 것이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존재. 언제나 내가 가는 길에 내가 지나간 그 뒤에 그는 따라왔다. 쉬는 날은 없었다. 그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그는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왜 나를 따라오지?

왜 나를 관찰하지?

왜 나야?


몇 번이고 묻고싶었지만 그에게 물을 용기는 없었다. 당신은 누구야. 라고 묻는 순간 그가 나에게 뭐라고 할지 나에게 무슨짓을 할지, 무섭고 두려웠다. 첫 번째 모퉁이, 두 번째 모퉁이, 세 번째 모퉁이까지 돌았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그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발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걸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 눈 앞에는 높은 벽이 솟아있었다.


"더 도망 안 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도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그의 목소리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그가 나를 어떻게라도 할것같았다. 머릿 속은 여전히 하얬고 눈 앞은 여전히 막혀있다. 고개를 숙이며 무엇이라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나에게 그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항상 같은 박자로, 터벅, 터벅, 터벅.


"이제 도망 안가냐구. 응?"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던 나의 어깨를 덥석 잡더니 어느 가게의 셔터로 세게 밀쳤다. 아파. 등으로 전해져오는 아픔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고개를 들지않은 나의 시야에 보이는것은 검은 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그의 몸 뿐. 아, 이제 슬슬 내가 죽을 때가 됐나보다. 남자가 남자를 스토킹한다면 그거 밖에 없지 않을까.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온갖 방법을 생각하면서 힘도 들어가지 않는 눈으로 그의 집업 주머니 속에서 움직이는 손 쪽을 멍하니 쳐다봤다.


"무슨 생각해?"


힘 없이 숙여져있던 고개가 갑자기 들려지고 옆에서 비춰지는 가로등 불빛에 눈이 부셔 다시 한 번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텅 빈 듯한 눈과 날카로운 눈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줘봐야 당신을 날 놓아주지 않을거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이고 입술이 말라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하는것이 맞을까. 내 턱을 잡은 손이 천천히 내려가고 어느샌가 다른 한 쪽 팔이 내 얼굴 옆으로 와 마치 너는 도망갈 수 없다는 듯이 나를 가뒀다. 어떻게 해야하지. 더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는 나에게 더 가까이 와서는 얼굴을 바짝 붙이고는 나의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눈은 맑은 갈색의 예쁜 색과는 다르게 아까보다도 더 차갑고 더 냉정하고 더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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