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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단편

[국민] 기차

160208

 

"기차 들어온다."


지민의 뒤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던 정국이 지민의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옆에 세워두었던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지민은 정국을 힐끔 보고는 왠지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핸드폰 그만 보고 나를 좀 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핸드폰한테 질투하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차가 완전히 설 때까지 기다렸다.


"캐리어 이리 줘. 이쪽에 둘게."


이번 명절연휴는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자그마치 5일을 쉴 수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금요일에 일찍 시골집 또는 자신의 집에 가버렸고, 덕분에 일요일에 느즈막히 출발한 두 사람은 드문 드문 사람이 있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캐리어를 정리하고 자리에 앉고 나서야 깊게 숨을 쉰 지민은 점퍼를 벗어 사람이 없어 비어있는 맞은 편 자리에 올려두었다. 정국은 점퍼를 벗어두며 피곤해보이는 지민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눈을 감고 잘 준비에 들어간 지민은 정국이 바라보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형, 이거 안대 쓰고 자요."
"아, 고마워."


평소라면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고, 자신이 무언가를 주었다는 것에 기뻐했을 지민이 많이 피곤해보이고 힘들어 보여 정국은 안대를 쓰는 지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손길에 놀란 지민이 안대를 쓰다말고 정국을 바라보자 정국은 자기도 모르게 했던 행동이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해서 눈을 약간 크게 떴다가 살풋 웃으며 굿나잇. 하고 말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안대를 쓰는 것도 잊은 채 잠이 들었다.


*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지민이 조금씩 느껴지는 한기에 눈을 떴다. 혹시나 하고 담요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커다란 담요를 꺼내다가 문득 옷을 자신보다 얇게 입은 정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바보는 감기도 잘 걸리면서 무슨 옷을 저렇게 얇게 입는대? 지민의 작은 중얼거림에 정국이 뒤척거렸지만 워낙에 한 번 잠들면 잘 일어나지 않는 정국이었기에 지민은 신경쓰지 않고 담요를 목아래까지 덮어주었다. 

곤히 자고 있는 정국의 얼굴은 마치 아기같았다. 흰 편이고 반들거리는 피부도, 꼭 감은 눈 위에 진하고 길게 나와있는 속눈썹도, 무슨 꿈을 꾸는 건지 가끔씩 오물거리는 입술도 귀여웠다. 지민은 어차피 만져도 안깨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정국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만져보았다. 평소에 관리를 잘해서인지 입술은 말랑말랑했다. 마치 자신에게 키스해달라고 말하는 듯이 자신을 향해 있는 그 입술에 지민은 정말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정국에게 몸을 기울여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고, 두 입술이 닿자마자 몸을 다시 돌려 자리에 앉았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한숨과 함께 작게 중얼거린 지민은 갑자기 정국의 목소리가 듣고싶었지만 그를 깨울 수는 없었기에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꽂고는 정국의 노래를 재생시켰다. 달콤하지만 쓸쓸하기도 하고 부드럽지만 강하기도 한 목소리는 지민의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 순간 지민의 몸 위에 무언가가 덮어졌다. 무언가 싶어 눈을 떠보니 자신이 정국에게 덮어준 담요가 자신의 몸을 덮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른쪽을 보니 정국이 다시 팔을 베고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너 덮어, 왜 줘."
"형 덮어요. 감기 걸려요."
"나보다 니가 더 잘 걸리잖아, 덮어."
"형, 지금 형 목 쉬었거든요. 덮고 자요."


자신이 말을 해도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팔을 벤 채로 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말하는 그가 조금은 얄미웠지만 지민은 정국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기뻐 조용히 담요를 제대로 덮고는 정국에게 말을 걸며 빼 두었던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그리고 가만히 정국을 바라보는데, 그가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지민의 어깨에 기대며 팔 아프다. 하고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아직 노래를 재생시키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지민의 귀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었고, 지민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정국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한 시간 동안 잠들었다.


*


지민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맞은 편에 보이는 것은 편의점 비닐봉지였다. 아까 기차에 타기 전에 혹시 배고파질지도 모르니까 도시락을 하나씩 사가자며 정국이 조르듯 말해서 산 것이었다. 오른쪽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국이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지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어, 깼네요. 하고 한마디 하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지민은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시 시트에 등을 기대고는 핸드폰을 봤다.


"형, 아."


갑작스레 눈앞에 내밀어진 유부초밥에 지민이 표정 전체에 물음표를 띄우고 정국을 바라보자 정국은 형 그냥 두면 뭐 안 먹을거잖아요. 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물론 지민은 이렇게 두면 몇 시간은 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국이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함 때문인지 무엇도 입에 대고 싶지 않아 정국의 손을 살짝 밀었다.


"너 먹어. 나 도시락 있잖아."
"안 먹을거잖아요."
"먹을거야."
"거짓말."
"...진짜."
"그러지말고 빨리."
"안 먹어..."
"형."
"왜."
"나 팔 아파요."


지민은 정국이 평소대로 금방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절을 했던 것이었는데 오늘따라 정국은 말투도, 행동도, 눈빛까지도 단호했다. 하지만 그 단호함 사이에 걱정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졌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에게 조르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국은 지민이 요즘 들어 밥도 잘 먹지 않고 군것질은 일절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냈던 것이었다. 몇 초 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결국 지민은 정국이 내민 유부초밥을 입에 넣었다. 다른 것들은 그리 크지 않아보이는데 지민이 입에 넣은 유부초밥을 한입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큰 것을 보니 정국이 제일 큰 것을 골라준 듯 했다.


"맛있어요?"


아직 다 씹지도 못하고 우물우물 거리고 있는 지민이 귀여워 정국은 눈을 확 접으며 웃고는 유부초밥으로 빵빵하게 차 있는 지민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지민이 빨리 대답하려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려는 것을 보고는 끄덕끄덕 아니면 도리도리로 해요. 꼭꼭 씹어먹어야지. 하고 말하며 아까보다도 더 활짝 웃었다. 그러자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정국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내보였다. 피곤함이 묻어나오던 아까와는 다르게 두 사람 모두 행복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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