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커피도 못 마시는 게 왜 아메리카노를 시키냐."
정말 그랬다. 커피는 써서 못 마시는 주제에, 라떼도 아니고 마끼아또도 아니고 아메리카노를 왜 시켰을까. 빤히 쳐다보는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 마셔본 지민이는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팍 찌푸렸다. 따뜻한 걸 시켰으면 차라리 아이스크림이라도 시켜서 아포가토처럼 같이 먹지. 한숨을 쉬자 그는 나를 힐끔 보고는 형, 나랑 바꿔주면 안돼요? 하고 묻는다. 내가 너랑 왜 바꿔 인마. 퉁명스럽게 말하자 입을 삐죽 내밀고는 그 맑고 동그란 눈을 요리조리 데굴데굴 굴리더니 주섬주섬 뭘 챙긴다. 아, 저거 아메리카노 버려지겠네.
"아, 알았어 인마. 이거 마셔."
"아싸!"
"너 근데, 이것도 쓰다고 할 것 같은데."
"에이, 이거보다는 안 쓰겠죠."
그는 내 앞에 놓여져있던 카푸치노를 가져다가 한 모금 마셔보더니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가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가 하며 희비가 왔다갔다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생크림때문에 달달하고 뒷맛은 씁쓸하니까 이게 뭐지 싶은 거겠지. 앞으로 같이 카페에 오면 커피 종류는 시키지 못하게 해야겠어. 그의 다양한 표정들을 관찰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지민이의 표정이 한번에 확 밝아졌다.
"이거 맛있어요!"
"아, 맛있어?"
신기하게도, 맛있다고 했다. 핫초코밖에 마시지 않던 박지민이 신세계를 발견했네.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손을 뻗는데 그의 윗입술에 묻어있는 생크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뭐 설마. 거품키스를 시도하는 그런 뻔한 전개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옆에 두었던 휴지를 들어 입술을 닦아주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 묻었어요? 하고 묻는다. 저 똘망똘망한 눈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리가 썩었나보다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 음란마귀는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거지.
"형, 형. 그래서 나 왜 불렀어요?"
"그냥."
"그냥?"
"그냥 너 뭐 먹는 거 보고 싶길래."
"그게 뭐에요-"
"케이크 먹을래 지민아?"
"어, 네. 있음 좋죠!"
저렇게 귀여우니 내가 널 안 좋아하고 배기냐. 뒷말은 마음 속에 꾹꾹 눌러담으며 지민이를 데리고 카운터 옆에 나란히 서서 진열된 케이크들을 둘러보았다. 뭐가 좋을까. 한 번 스윽 둘러본 나의 눈은 자연스럽게 색색의 맛있어보이는 케이크에 정신이 팔린 너의 옆 얼굴로 향했다. 평소에는 다이어트 한다고 케이크고 빵이고 탄수화물은 스스로 자제하던 그이기에, 나는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사실 마음같아서는 여기 있는 케이크 전부 사서 먹여주고 싶었지만 그 마음도 꾹꾹 눌러담았다.
"형, 나 이거요!"
"초코? 그래 너라면 초코일 것 같았어."
"그렇죠! 나라면 초코.. 네?"
"너 초코 좋아하잖아. 여튼, 이거면 되지?"
"네!"
케이크가 준비되고,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는 지민이의 표정은 행복함 그 자체였다. 동글동글하게 쏙 올라온 광대가 햇빛에 반짝거려 순간 만져볼 뻔 했다. 피부도 좋지.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시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이거 간접키스네. 그대로 굳어버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됐는지 지민이는 내 눈 앞에서 손을 휘휘 저었다. 나 멀쩡해 인마. 툭 한마디를 던지자 왜 그래요. 정신차려요 형. 하며 또 기어오르는 이 꼬맹이를 어쩔까 하다가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조금 잘라내고는 그의 입 앞에 가져갔다. 지민이는 자기가 먹으려고 포크를 들다가 자신의 입 앞에서 멈춰있는 내 손을 보고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봐. 안 먹을거야?"
"아니, 그. 어.. 네, 먹을게요."
내가 케이크 한 번 먹여줬다고 죽냐. 하고 말하자 그는 케이크의 맛이 느껴질 때까지도 경계하는 눈빛을 풀지 않았다. 하긴, 내가 평소에 이런 짓을 안하기는 하지. 앞으로는 좀 자주 해야겠어.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지민이가 눈을 번쩍 뜨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테이블 위에 둔 내 손을 빠르게 때렸다. 아파. 나의 한마디에 그는 때리던 손을 멈추더니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둔 채로 형 이거 진짜 맛있어요! 하고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하고 대답하는데 계속해서 내 손위에 올려져 있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 손 잡고 싶다. 잡을까.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그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고, 쓰다듬었다. 슬쩍 빼려는 그의 행동이 느껴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는 그의 손을 더 꼭 잡고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