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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단편

[뷔민] 이별


(BGM :: 블락비 - 몇 년 후에)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말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냥 너를 만나서, 내가 했던 잘못을 말하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하고,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너와의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니 어느새, 나는 너를 울게 했고, 너를 두고 일어났고, 네가 말하는 이별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왜였을까. 너를 아직 사랑하는 게 분명한데. 왜일까.


"지민이는?"
"야."
"괜찮아. 나 지민이랑 헤어졌다."
"왜? 너네 잘 지냈잖아."
"하아... 나도 모르겠다. 이젠."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서 놀 때마다 꼭 한 명 쯤은 나에게 물어봤다. 지민이는? 나도 몰라 새끼야. 하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헤어졌다'라는 단어를 내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입 안에서 씁쓸한 무언가가 퍼졌다. 지민이한테 무언가 말을 할 때마다 달콤함이 퍼지던 입 안에서는 그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화를 낼 때부터 이미 날카로운 가시같은 것들이 솟아났고 지민이에 대해 남아있는 내 마음을 억지로 감추고 거짓말을 할 때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기분 나쁜 무언가가 늘어갔다.

헤어진지 며칠이나 됐더라. 지민이와 헤어지고 나서부터 날짜감각도 요일감각도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내가 무언가 바뀐 것을 눈치 챈듯 약속장소에 나갈 때마다 너 괜찮냐? 하고 묻곤 했다. 괜찮냐니. 괜찮을 리가 있냐.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진 말을 했다. 그리고 내 애인을 울렸다. 그리고 그 후로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멀쩡할 것 같냐. 오히려 그렇게 묻고 싶었다. 보고싶어 미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집 앞에 찾아가서 보고싶었다고 미안했다고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아... 박지민... 보고싶어... 죽겠다..."


며칠 째 잘 때마다 한시간에 한 번 씩 깨는 통에 피곤한데도 밤만 되면 네가 생각 나 어쩔 줄을 몰랐다. 메세지라도 보내볼까 하고 켠 메신저에는 우리가 헤어진 날의 대화 기록이 남아있었다. 날짜도 있네. 2주 전... 벌써 2주나 됐구나. 이제야 본 너의 프로필 사진은 그 날의 표정과는 다르게 행복하게 웃고있었다. 친구들이랑 어딘가 놀러갔나보네. 사진 속에는 여자도 있었다. 유난히 지민이에게 붙어있는 여자를 보고 질투가 났지만 이미 헤어진 사이라는 걸 깨닫고는 금세 그 질투마저도 사라져버렸다. 안되겠다. 폰을 끄고 옆에 대충 던져두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새까맣다. 네가 없는 지금의 내 생활과 같아 보여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코웃음이 났다. 크게 숨을 쉬고 한숨을 쉬니 어디선가 한숨 좀 그만 쉬랬지. 할아버지야? 하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보고싶다. 생각하자마자 검은 배경 위에 하얗게 몽글몽글 너의 모습이 그려졌다. 수채화같이 약간은 흐릿하게, 부드럽게. 나를 보고 웃고 장난을 치던 너의 모습은 어느새 나를 보더니 그 예쁜 눈을 꼭 감고 눈물을 흘리던 그 날의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미치겠네. 2주씩이나 참았는데,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너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지민아 보고싶어


미쳤지 김태형. 정신 못차리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혹시나 답장이 올까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계속 보고있을 수가 없어 손에 꼭 쥔 채 눈을 감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데,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진동이 울렸다. 답장 왔나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핸드폰을 봤을 때,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과 액정에 떠있는 지민이 라는 세 글자에 시야가 흐려졌다. 이런 상태로 받기 싫은데, 혹여나 네가 전화를 끊어버릴까 무서워 통화 버튼을 누르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전화기를 얼굴에 갖다대었다.


'...여보세요?'
"..."
'...태형아.'
"..."
'받았으면 말을 해... 나 혼자 말 해?'
"...응."
'...문자, 왜 했어?'
"...그냥."
'그냥... 그냥... 그냥 갑자기 보고싶었어?'
"...아니.."


처음 전화를 받을 때부터 계속해서 차분한 너의 목소리에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어린 아이를 달래듯, 다정하고 상냥한 너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을 때마다 감정은 더 북받쳐오르고 목을 꽉 막았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목 저 아래서부터 목소리를 겨우겨우 끄집어내 짧게 대답하자 너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하며 나에게 물어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는 건 너 하나 뿐이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락 없었잖아.'
"...응."
'왜 연락 안 했어? 내가 화낼 것 같았어?'
"...아니.."
'보고싶어질까봐 그랬어?'
"..."
'나는 그랬는데.'
"...어?"
'니가 문자해서 보고싶잖아 멍청아.'
"...나도, 나도.. 나도 보고싶어 지민아."
'푸흐... 편의점 앞으로 나와.'


길다란 너의 질문들과 짧은 나의 대답들이 이어지고 엮이면서 겁쟁이인 나는 혹시나 네가 다시 한 번 이별을 말할까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더더욱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혹여나 또 거짓말을 할까봐, 너에게 모진 말을 할까봐. 너의 보고싶어질까봐 그랬냐는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는 대답을 하면 비웃을까봐. 대답을 듣는 그 즉시 네가 질려하며 전화를 끊어버릴까봐. 그리고, 보고싶다는 너의 말에 나는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멈추질 않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안달난 어린 아이처럼, 다급하게 너에게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그 날로부터 2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감추었던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다시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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